탁. 눈앞에서 닫힌 문을 응시하던 이는 잠시 사납게 타오르는 속을 가다듬었다. 얇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은 대체 몇 병을 들이켰는지 걸쭉히 절여져 있었다. 짐승 같은 놈들.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던 메이는 아비라는 자가 회초리질을 하면서 강조했던 조신한 걸음 따위는 던져버린 듯 발소리를 내며 문에서 멀어졌다. 한걸음에 제 방에 도착한 메이는 제 몸을 ...
색을 집어삼키는 자의 소문은 조용히 퍼져나갔다. 그가 다녀간 자리는 모든 색을 잃고 오로지 텅 빈 흰빛만을 띤다는, 그런 소문이. 작은 들꽃과 나무에서 시작해, 마침내 한 외곽의 숲마저 하얗게 물들어버리자, 떠도는 헛소문에 불과했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퍼져나갔다. 그러니, 소문을 쫓는 한 여행자의 귀에도 그 이야기가 흘러들어온 것은 우연이었다고 봐도 무관...
처절한 울음소리가 멀어지고 마지막 기차의 엔진소리가 가실 무렵, 그는 굳게 닫힌 셔터에 등을 대고 앉았다. 얇은 셔터가 두껍게 느껴질 만큼, 누구도 보내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강경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밤하늘은 숨을 죽이며 그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들을 비춰냈다. 하나, 둘, 셋... 어느새 감고 있던 눈을 뜬 그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하나하나 세...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포스트에 들어오신 당신께서는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있으신지 묻고싶다.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서 한국의 문화를 빼앗아가려는 움직임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김치나 한복이 중국의 것이라는 순억지를 보면서 몇번이나 눈쌀을 찌푸렸던가. 그들에게 반박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멋진 신세계'. 작중에 나오는 '야만인' 존의 말에서 언급된 단어임과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5막 1장>의 대사이기도 하다. 문명에서부터 떨어져 나온 어머니 린다에게서 태어난 존은 자신이 자란 공동체에서 철저히 이방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구경을 온 '문명인' 버나드 마르크스와 레니나 크라운을 따라 런...
뭉게구름이 피어있는 파란 하늘에 떠있는 붉은 연 하나. 투박한 얼레를 두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까무잡잡한 어린아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책. 고운 빛깔과는 달리 약한 비닐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연이 꼭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 같은 것은 내 감상뿐이었을까. 언뜻 보면 평화로움이 가득한 이 사진 한 장이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집어 들게...
초여름의 밤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날카롭게 신경을 긁어댔다. 불을 끈 방 안에서 한껏 열이 오른 형광등 스탠드에 의지해 띄엄띄엄 샤프를 놀리던 그는 이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붙잡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밤, 끊임없이 들이키던 카페인과 피로가 섞인 채로 온몸에 진득히 달라붙은 듯한 미묘하게 불쾌한 감각에 미간을 찌푸리기도 잠시, ...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날 미끄러운 산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그대가 잠든 곳이 나온다오 푸른 이불 덮고 잠든 그대 옆에 앉아 두런두런 말을 해본다오 자네, 여기선 숨이 좀 쉬어지는가, 탁 트인게 전망이 참 좋구만 참, 자두가 익었길래 가져와봤소 더우니 물이라도 한 잔 하고 자네, 어젠 자네가 꿈에 나왔소 나 보고싶었는가, 하고 왔다가 가더구만 보고싶기는,...
"난 비가 싫어." 오래전, 당신이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지요. 하루종일 쏟아지던 빗줄기를 보며 축 쳐져있던 당신은 겨우 울기를 멈춘 창밖을 보라며 저를 이끌었었지요. 검은 먹구름 몇 조각이 바람을 타고 흐르고 그 사이사이로 겨우 얼굴을 내밀던 만월을 보던 당신은 제 옆에 누워 비가 싫다고, 어두운 날씨에 나도 우울해지는 것 같다고. 그렇게 칭얼거리며 이...
사랑이라는 언어는 행복과 같은 뜻이 될 수 없어 사랑은 오히려 고통과 가까울거야 나는 지금껏 보아왔어 많은 사랑이 가루가 되어 끝나버리는 것을 사랑을 말하던 이도 얼마든지 잔인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나의 사랑도, 행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말해봐.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겠어...
같은 선에서 시작해 같은 시간을 살아왔으나 매 순간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만을 뼈저리게 느꼈다. 너의 뒤를 따르는 동안 피어오르는 이 회색빛 감정에 파묻혀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손에 쥐어진 질투라는 이름의 검붉은 단도에 몸서리치며 내던지던 것이 몇번이었을까. 저도 모르게 멈춰선 발은 좇기를 거부하고 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뒷모습. 당당하고 찬란한, 손...
나의 피고 질 사랑아, 오지 말아라 내 메마른 마음에 휩쓸려 부서질 너를 안단다 밤낮으로 내리는 검은 우울에 물들어 망가질 너를 안단다 음습한 감정에 발묶여 고통받을 너를 안단다 내가 준 상처에 결국 져버릴 감정이 될 것을 나는 안단다 나의 피고 질 사랑아, 내게 오지 말아라 목련 꽃의 아름다움은 땅과 만나면 사라진다더구나 하얀 꽃잎이 땅과 만나 형체를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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